다둥이 아빠부터 무자식 왕까지? 조선 왕들의 자녀 수 알아보기

조선 왕들의 자녀 수는 어떻게 되나? 누가 가장 많은 자녀를 낳았을까?
조선 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다 보면 수많은 후궁과 왕자들이 권력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왕실의 가장 큰 책무 중 하나가 바로 왕위를 이을 후사를 안정적으로 남기는 '종묘사직의 번창'이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과연 조선 시대 왕들은 실제로 자녀를 몇 명이나 두었을까요? 27명의 왕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둥이 아빠'가 있는가 하면, 평생 아이를 한 명도 얻지 못해 애를 태운 왕도 있었습니다.

1. 조선 왕실 최고의 다둥이 왕 TOP 3
왕실의 번창이 곧 국가의 안정이었던 시절, 엄청난 자녀 수로 조정을 든든하게(?) 만들었던 조선 최고의 능력자 왕들입니다.
1위. 태종 (이방원) — 총 29명 (12남 17녀)
조선 왕실 최고의 다둥이 아빠는 바로 제3대 왕 태종입니다.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던 태종은 정비인 원경왕후와의 사이에서만 4남 4녀(그중 한 명이 세종대왕입니다)를 두었고, 수많은 후궁을 통해 총 29명이라는 압도적인 수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들보다 딸(17명)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2위. 성종 — 총 28명 (16남 12녀)
태종의 뒤를 바짝 쫓는 2위는 조선의 기틀을 완성한 제9대 왕 성종입니다. 성종은 유교적 성군으로 칭송받지만, 밤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꾼이었는데요. 정비에게서는 후사를 얻지 못했거나 비극(폐비 윤씨)을 겪었지만, 후궁들을 통해 무려 28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특히 아들만 16명을 낳아 조선 왕 중 '가장 많은 아들을 둔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산군과 중종이 모두 성종의 아들입니다.)
3위. 선조 — 총 25명 (14남 11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겪었던 제14대 왕 선조가 25명으로 3위에 올랐습니다. 전쟁 통에 피란을 다니면서도 후사를 남기는 데 열심이었던 선조는 후궁들에게서 많은 자녀를 얻었고, 말년에는 인목왕후를 새 왕비로 맞아 영창대군과 정명공주를 낳았습니다. 이 방대한 자녀 수는 훗날 광해군 시절 격렬한 왕위 다툼과 피비린내 나는 숙청(계축옥사)의 불씨가 되기도 했습니다.
- 그 외 다둥이 왕: 제2대 정종(23명), 제4대 세종대왕(22명) 역시 20명이 넘는 자녀를 둔 대표적인 다산의 왕들입니다.

2. 자녀가 적거나 단 한 명도 없었던 '무자식' 왕들
반면, 수많은 후궁을 거느릴 수 있는 절대 권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자식을 한 명도 얻지 못해 가슴을 쥐어짜야 했던 비운의 왕들도 있었습니다.
- 제5대 문종 (2명): 세종대왕의 장남으로 외모와 학식이 뛰어났으나, 세자 시절부터 세자빈들과의 불화가 심했고 몸이 너무 약해 정비인 현덕왕후와의 사이에서 단종과 경혜공주를 낳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자녀를 단 한 명도 낳지 못하고 일찍 승하했습니다.
- 제6대 단종 (0명):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어 17세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기에 자녀를 남길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 제12대 인종 (0명): 효심이 깊고 어질었던 인종은 문정왕후의 핍박과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왕위에 오른 지 고작 9개월 만에 승하하면서 후사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 제20대 경종 (0명): 장희빈의 아들로 유명한 경종은 평생 몸이 극도로 허약했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세자 시절 어머니의 비극을 겪으며 큰 충격을 받아 생식 기능을 상실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약골이었으며, 결국 자녀 없이 이복동생(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 제27대 순종 (0명):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2대 황제인 순종 역시 어린 시절 김홍륙의 독차 사건 등으로 인해 몸이 완전히 망가져 평생 후사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조선 왕실의 직계 혈통은 끊어지게 됩니다.
3. 조선 왕들의 평균 자녀 수는 몇 명일까?
태종처럼 29명을 낳은 왕도 있고, 아예 없는 왕도 있다 보니 편차가 참 심한데요. 27명의 조선 왕들이 낳은 자녀를 모두 더하면 총 240여 명에 달합니다. 이를 평균으로 계산해 보면 왕 한 명당 약 9명꼴로 자녀를 둔 셈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7명대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대가족이지만, 당시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을 고려하면 왕실에서도 성인까지 건강하게 살아남는 자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마치며
왕들의 자녀 수는 단순히 개인의 가정사를 넘어 조선의 정치사를 뒤흔드는 핵심 변수였습니다. 자식이 너무 많으면 왕위 계승권을 두고 형제간의 피바람(방원의 난, 계축옥사)이 불었고, 반대로 자식이 너무 없으면 후사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여오느라 조정이 발칵 뒤집히곤 했으니까요. 역사는 역시 알면 알수록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나는 흥미로운 드라마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