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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명의 비밀

마스터지 2026. 10. 11. 00:25

우리가 매일 부르는 그 이름, 무려 2,000년 전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왔다고?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도로 표지판,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들. 과연 이 이름들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조선시대? 고려시대? 놀랍게도 우리가 지금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몇몇 지명은 삼국시대, 심지어 고구려와 백제 시절 이전부터 불리던 이름이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내려온 경우가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전쟁과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지명 창씨개명과 현대의 행정구역 개편 속에서도 살아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명’과 ‘과거의 이름을 지금까지 그대로 쓰는 동네’들의 흥미진진한 역사를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이름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지명의 역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은 단연 '압록강(鴨綠江)'과 '백두산(白頭山)', 그리고 '주신(조선)'이나 '진한·마한·변한(삼한)' 같은 고대 국가 및 자치 영역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행정구역 단위의 도시 지명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곳들이 있습니다.

① 2,000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 경주(徐羅伐·金城)와 진주·전주

  • 경주(慶州): 신라의 옛 수도인 경주는 신라 시대에는 '서라벌(徐羅伐)' 또는 '금성(金城)'으로 불렸습니다. 현재의 '경주'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18년(935년) 신라가 경순왕 때 고려에 병합되면서 처음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명 자체가 1,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신라 시절부터 이어진 공간적 정체성은 2,000년 이상 유지되고 있습니다.
  • 달구벌(대구)과 미추홀(인천): 비록 지금은 이름이 한자식으로 바뀌었지만,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이나 인천의 옛 이름인 '미추홀'은 삼국사기 기록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순우리말 지명 형태 중 하나입니다.

② 삼국시대 한자화 개편(757년) 이전의 고유어 지명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은 우리나라 지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당시 신라는 전국 행정구역의 순우리말 이름을 '한자 2글자'로 대대적으로 바꾸는 일명 '지명 한화(漢化) 정책'을 펼쳤습니다.

  • 수성(水城) → 수원(水原)
  • 매홀(買忽) → 수성(水城)
  • 한산(漢山) → 광주(廣州)

따라서 현재 우리가 쓰는 대다수 지명(서울, 인천, 대구, 광주 등)의 기원은 최소 8세기 신라 경덕왕 시절까지 올라갑니다. 즉, 지금 우리가 부르는 시·군 단위 지명의 80% 이상이 이미 1,300년 전 신라시대에 확립된 셈입니다.

2. 과거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진짜 고대 동네들

 

시 단위의 거대 행정구역 외에, "신라·고구려·백제 시대에 부르던 이름을 한자 표기나 음차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하는 동네(동·리)"는 어디일까요? 대표적인 진짜 고대 지명 동네들을 소개합니다.

① 서울 풍납동(風納洞) & 방이동(芳夷洞) — 백제의 숨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풍납동은 백제의 첫 수도였던 '위례성(풍납토성)'이 있던 자리입니다. '풍납'이라는 지명은 바람이 들어오는 포구라는 의미의 고유어 바람들이(바람드리)를 한자로 옮겨 적은(음차)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무려 백제 온조왕 시절(B.C. 18년경)부터 이어져 온 지명의 원형이 지금까지 유지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② 경기도 화성시 남양(南陽)과 파주시 교하(交河)

  • 파주 교하(交河): 한강과 임진강 두 줄기의 큰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의 '교하'는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천정구(泉井口)'를 신라 경덕왕 때 '교하'로 고친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단 한 한자도 바뀌지 않고 면/동 이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 화성 남양(南陽): 고구려의 '당성(唐城)' 지역이었으나 신라시대에 '남양'으로 명명된 이후 1,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명이 보존되어 현재 화성시 남양읍으로 남아있습니다.

③ 충청도 부여의 사비(泗批)와 공주의 웅진(熊津)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현재의 부여읍 일대)와 문주왕 시절의 수도였던 웅진(현재의 공주시 웅진동) 역시 1,500년 전 백제의 지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주시 '웅진동(熊津洞)'은 백제시대의 '고마나루(곰나루)'를 한자로 번역한 지명으로, 현재까지 실존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고대 동네 이름 중 하나입니다.

④ 순우리말 지명이 생생히 살아있는 곳: 서울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특별한 예는 바로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입니다. 서울은 한자가 아닌 순우리말입니다. 신라시대 수도를 가리키던 '서라벌(徐羅伐) → 서벌 → 서울'로 언어적 변화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진 이름입니다. 즉, '서울'이라는 말 자체가 2,000년 전 신라시대부터 '수도'를 뜻하던 가장 오래된 고유어 지명인 셈입니다.

 

3. 천년이 지나도 지명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

 

전쟁으로 도시가 잿더미가 되고 지도가 몇 번씩 바뀌었음에도 특정 동네의 이름이 천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지형과 자연환경의 반영: '교하(두 강이 만남)', '웅진(곰이 건너던 나루터)'처럼 산, 강, 포구 등 변하지 않는 자연 지형을 바탕으로 지어진 이름은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대체되지 않았습니다.
  2. 민중들의 구전 힘: 비록 일제강점기(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일제가 행정 편의상 고유 지명을 강제로 합치고 왜곡했음에도, 그 땅에 살아온 주민들이 입에서 입으로 고유 지명을 계속 불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담긴 천년의 무게

 

우리가 매일 퇴근길에 내리는 버스 정류장 이름, 지번 주소에 적힌 작은 동네 이름 하나에도 알고 보면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살고 계신 동네의 이름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이번 주말에는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의 한자 뜻과 유래를 한 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