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서재필, 대한민국 개화기의 길을 연 선각자

마스터지 2025. 4. 22. 00:22

조국을 향한 그의 두 이름, 서재필(필립 제이슨)

 

서재필(徐載弼, 1864~1951).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독립신문’, ‘갑신정변’, ‘독립협회’, 그리고 ‘한국 최초의 의사’. 이 모든 굵직한 역사적 키워드의 중심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개화기의 문을 열고, 조국의 자주와 근대화를 외치며 평생을 조선과 미국을 오간 선각자 서재필, 영어 이름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입니다.

서재필

조선의 개혁을 꿈꾼 청년, 갑신정변에 뛰어들다

 

서재필은 1864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충청남도 논산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그는 1882년 별시문과에 급제하며 조정에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낡은 체제에 의문을 품고, 개화파 인물인 김옥균, 박영효 등과 교류하면서 급진적 개혁 사상을 키웁니다.

 

그 결과물이 1884년 갑신정변이었습니다. 그는 김옥균과 함께 정변을 기획하고, 신정부의 병조참판에까지 올랐지만, 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서재필은 역적으로 몰렸고, 가족들은 자살하거나 아사, 혹은 참형에 처해지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2024.07.09 - [조선시대] -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새로운 변화를 꿈꾼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의 개화파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새로운 변화를 꿈꾼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의 개화파

갑신정변, 한국 근대화의 불씨를 당긴 사건갑신정변은 조선 후기, 근대화의 불씨를 당긴 중요한 사건으로,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에 일어난 혁명입니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개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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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망명과 새로운 인생 –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사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은 자신의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온갖 품팔이와 노력 끝에 콜롬비아 의대에 진학, 1892년 한국인 최초로 서양 의학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의 미국 생활은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이었습니다. 교회 활동과 번역, 박물관 근무, 그리고 미국 의료계와의 연결을 통해 그는 의사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조국을 위한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귀국 후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 활동

 

1895년, 조선 정부와 박영효의 요청으로 귀국한 서재필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듬해인 1896년, 그는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을 창간하였고, 한글판과 영문판을 발행해 자주독립의식과 근대 시민정신을 국민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한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독립문과 독립관을 건립하고, 국민계몽운동, 정치개혁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친러 세력의 견제 속에서 그는 결국 189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립신문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 3·1운동과 워싱턴 군축회의

 

서재필은 미국에서 다시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주도하며 전 세계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좌절을 겪게 됩니다.

 

해방된 조국, 다시 돌아온 개화의 선구자

 

광복 이후, 미군정은 서재필을 귀국시켜 조국의 혼란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1947년 귀국한 서재필미군정 고문, 과도정부 특별의정관으로 활동했지만, 국내 정치 기반이 없고, 고령의 나이로 인해 결국 큰 역할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는 194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1951년 한국전쟁 중 필라델피아 근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조국을 향한 평생의 헌신

 

서재필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시대의 전환점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역적으로 낙인찍혀 가족을 잃고, 미국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이민자 생활, 의사로서의 성공, 언론인과 정치인으로서의 활동, 독립운동가로서의 헌신, 그리고 다시 돌아온 조국에서의 좌절.
그의 인생은 고통과 희생, 그러나 조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채워진 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오늘날 우리는 ‘서재필’이라는 이름보다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이 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이름 모두 조국을 위해 살았던 한 사람의 진심을 상징합니다.

그는 개화기의 문을 열었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으며, 언론과 의학, 정치, 외교 모든 영역에서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글을 쓰고 읽고,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그와 같은 선각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