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조선시대 과거시험, 어떤 문제가 출제되었을까?

마스터지 2025. 7. 17. 00:21

조선시대 과거시험, 진짜 공부 잘하는 법? 지금 봐도 놀라운 시험 문제 유형 공개

 

‘만약 당신이 공자라면, 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이 질문, 오늘날 행정고시나 고급 공무원 논술시험에서 나올 법한 내용 같지 않나요?
놀랍게도, 이 질문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실제로 출제된 문제 유형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은 수백 년간 과거제도를 통해 문관, 무관, 기술관을 선발했고, 이는 단순한 암기 시험이 아닌 정책 사고력, 문장력, 철학적 깊이까지 평가하는 고차원 시험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의 과거시험이 어떤 구조로 운영되었고, 문제 유형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과거시험, 단순 암기? 오산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 문과(文科): 문관 선발 시험으로 가장 중요하고 영예로운 시험
  • 무과(武科): 무관을 뽑는 시험, 병법과 무예 실기 평가 포함
  • 잡과(雜科): 의과, 율과(법률), 역과(역학), 산과(수학), 음양과 등 기술관 선발
  • 소과(小科): 문과의 예비시험으로, 생원시와 진사시로 구성

그중에서도 문과가 가장 권위 있는 시험이었으며, 초시(1차), 복시(2차), 전시(3차)로 나뉘어 점점 고난도로 심화되는 구조였습니다. 전시는 국왕이 직접 주제를 내기도 했으며, 합격자는 곧바로 고위 관직으로 직행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시험(국립중앙박물관)

시험의 핵심: 경전 이해력 + 현실 문제 해결력

 

시험 과목은 현대인의 기준으로도 까다롭습니다. 주로 다음과 같은 형식이 포함되었습니다.

  • 시(詩), 부(賦): 고전적 문예 감각과 표현력 측정
  • 표(表), 전(箋): 공식 문서 형식의 문장력 시험
  • 책문(策問): 국왕이 시국을 반영하여 직접 출제하는 핵심 논술형 질문

책문은 지금의 논술형 시험 혹은 정책 제안서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부정부패를 근절할 방안은 무엇인가?”, “노비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은?” 같은 문제들이 실제로 출제되었습니다.

 

실제 출제 문제들, 지금 봐도 감탄

 

연도 실제 문제 예시
태종 1415년 관리들의 근무 태만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행정 운영 방안을 제시하라
세종 1426년경 우리나라 노비 제도의 기원과 문제점, 개선책은 무엇인가
중종 1520년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영조 1740년 형벌 시행에 있어 신분별 차별이 정당한가
정조 1779년 서얼 차별 철폐가 사회 통합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놀라운 점은, 이러한 질문들이 단지 유교 경전의 해석을 넘어서, 실제 행정 개혁, 제도 개선, 사회 정의 등 실용적인 통치 능력을 평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답안 형식도 고난도

 

과거시험의 답안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적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 사서삼경, 유교 경전에서 적절한 구절을 암기해 정확히 인용해야 하고,
  • 논리적 구조로 서론-본론-결론을 갖추며,
  • 문장 표현력과 품격 있는 언어 사용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실제로는 A4 용지 수십 장에 해당하는 분량의 답안이 작성되었고, 이는 오늘날 공무원 고시, 법률시험, 정책 논문 못지않은 고차원적 사고력과 작문 실력을 요구했습니다.

 

지금도 통하는 ‘과거시험 스타일’ 문제들

 

조선시대 실제 혹은 유사 과거시험 문제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 외교관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 술의 폐해를 논하라
  • 왕이 어떻게 해야 나라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지금 공무원 면접, 논술, 대학입시 에세이로 나와도 손색이 없는 수준입니다.

 

왜 이런 시험이 존재했을까?

 

조선은 ‘유교적 이상 국가’를 지향했고, 따라서 통치자는 덕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과거시험은 단지 암기력이 아니라, 국가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종합적 시험이었던 것이죠.

왕이 “네가 공자라면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느냐?”라는 문제를 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만큼 통치 철학과 정책 역량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지금으로 치면 행정고시, 정책 논술, 외교관 시험, 법률 시험을 모두 합쳐 놓은 수준이었습니다.
단순히 유교 경전만 아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보는 눈, 문제 해결 능력, 문장력까지 종합적으로 갖춘 인재를 찾고자 했던 시스템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시험보다 오히려 더 철학적이고, 더 현실적이었던 조선의 과거시험. 당시 수험생들도 만만치 않은 준비를 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