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1400년 전 백제 귀족의 불교 신앙이 살아있다, 완형 비석 최초 발견

마스터지 2025. 7. 25. 00:16

1400년 전 백제, 완형 비석 최초 발견의 충격적인 의미

 

1400여 년 전, 백제의 수도였던 충남 부여(사비성)에서 고대 역사를 뒤흔들 대단한 문화재가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완형 비석’ 즉, 원형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된 백제시대 비석이 역사상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비석은 백제 귀족의 불교 신앙과 사회상을 담은 글귀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학계와 문화재계 모두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놀라운 비석의 출토 배경부터 조형적 특성, 역사적 가치까지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비석(호남문화재연구원)

백제 완형 비석이란 무엇인가?

 

2023년, 윤선태 동국대 교수 연구팀은 충남 부여 금성산 북서쪽 기슭, 쌍북리 유적지의 제2호 건물터 배수구 인근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바로 백제 귀족의 불교 신앙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완형' 상태로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비석은 2025년 7월, 학계에 탁본 및 판독 결과가 공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비석 탁본

백제 비석, 왜 ‘완형’이 중요한가?

 

그동안 백제의 금석문(돌이나 금속에 새긴 글)은 대부분 파손되거나 일부만 남아 있어 그 내용을 온전히 해석하기 어려웠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택지적비나 무령왕릉의 매지권(買地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비석은 윗부분까지 온전히 남아 있어, 백제 금석문 연구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구조와 명문이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백제 비석은 지금까지 사례가 없습니다.

 

비석의 외형과 구조, 독특한 백제식 미감

 

항목 내용
높이 95.5cm
너비 51.3cm
윗부분 형태 타원형(둥근 곡선)
글자 배열 가로 9줄 × 세로 8줄, 총 72칸 중 56칸에 글자가 남아 있음
격자 폭 약 5.5cm
 

비석의 전면에는 마치 바둑판처럼 격자형 글자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사택지적비 등 일부 백제 비석에서만 일부 확인되던 특징인데요, 이번에 그것이 완전한 형태로 드러나며 백제 고유의 비석 양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증명해냈습니다.

비석(호남문화재연구원)

연대는 언제? '기해(己亥)' 간지가 주는 의미

 

비문 속에는 ‘기해(己亥)’라는 간지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는 서기 639년 또는 579년 중 하나로 추정되며,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해당 비석을 ‘백제기해명석비(百濟己亥銘石碑)’로 명명했습니다.

이는 곧 백제 후기, 사비 시대 귀족층의 불교적 삶과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연대이기도 합니다.

 

비문 내용 , 신앙과 삶이 담긴 문자

 

비문의 일부는 마멸되어 완전한 해독이 어렵지만, 현재까지 판독된 내용으로는 백제 귀족이 불교에 귀의하며 살아온 삶의 내력, 즉 신앙 생활과 정신세계를 기록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단순히 불교를 믿었다는 차원을 넘어, 당대 귀족이 얼마나 깊은 신앙심과 수행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역사적 가치, 단순한 돌이 아니다

 

이번 완형 비석의 발견은 백제사 연구와 삼국시대 문화사 복원에 있어 다음과 같은 핵심적 의미를 가집니다.

1. 백제 금석문 연구의 진보

  • 기존 금석문은 대부분 파편 형태였지만, 이번 발견은 전체 구조와 글자 배열, 양식까지 정형화된 완형 사례로 기록됩니다.
  • 학자들은 이를 통해 백제의 문자 사용 방식, 조형 감각, 기록 문화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불교 신앙과 귀족 문화의 실체

  • 불교가 국교 수준으로 승격되었던 백제 후기에, 신앙이 개인적·사회적 삶 전반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 사찰 건립, 불상 조성 등의 행위뿐 아니라, 개인의 신앙 내력을 기록으로 남기는 문화까지 존재했음을 드러냅니다.

3. 비석 조형의 예술성

  • 정밀한 바둑판 격자 글자칸, 타원형 상부, 조화로운 비례감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예술적·종교적 조형물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닙니다.

 

백제, 돌에 새긴 귀족의 믿음

 

부여에서 출토된 이 완형 백제 비석은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이는 7세기 백제 귀족의 내면, 사상, 신앙, 미감이 집약된 문자 그대로의 문화 유산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삼국시대 백제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는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비석을 중심으로 백제 불교사, 귀족 계층의 생활상, 문자 문화 연구는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