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과 월지에서 찾아낸 신라 궁궐터의 비밀
경주 왕경의 새로운 해석, 월성과 월지에서 드러난 신라 궁궐터의 비밀
약 1000년간 신라의 도읍 경주에서 임금과 왕족의 궁궐이 자리했던 정확한 위치에 대한 오랜 궁금증이 최근 발굴 조사 결과를 통해 새롭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학계에서는 『삼국사기』 등 사서 기록을 근거로 경주 월성을 신라 왕경의 핵심 유적으로 인식해왔습니다. 그러나 최신 발굴 결과는 월성이 아닌, 월지(안압지) 연못 주변에서 대규모 궁궐터가 확인되면서 기존의 왕경 인식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경주 왕경, 월성과 월지의 기존 인식
오랫동안 신라의 도읍 경주에서는 임금과 왕족이 생활한 궁궐이 월성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 월성: 『삼국사기』 등 고대 사서를 근거로, 왕경 유적의 상징적인 위치로 인식되어 왔으며, 간이 왕궁의 모습이 확인된다고 평가받았습니다.
- 월지(안압지): 그 주변 연못과 부속 시설들이 동궁과 연계되어 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루었으나, 주로 부속 공간 혹은 조경 시설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의 집중 발굴조사와 조사 성과가 쌓이면서, 월지 연못 둘레에서 임금과 태자의 거처로 추정되는 전각 및 딸림 시설이 새롭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최신 발굴 조사 결과와 주요 발견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소장 임승경)가 발표한 최근 발굴 성과에 따르면,
- 월지 동쪽 유적: 월지 연못 동남쪽 권역(Ⅱ-나지구)에서 대형 건물터가 새롭게 발굴되었습니다. 이 건물터는 정면 5칸(약 25m), 측면 4칸(약 18.1m)의 직사각형 평면, 총 면적 약 450㎡(136평) 규모이며, 건물 남쪽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월대 형태의 공간이 덧붙여져 전체 면적이 약 547㎡(165평)까지 확장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건물 구조와 내진감주: 발굴된 건물터는 회랑과 익랑에 둘러싸인 구조로, 앞에 넓은 마당과 내부 정원의 연못(원지) 흔적 등이 나타났습니다.
건물터 중앙에 ‘내진감주’라는 특수한 구조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왕의 옥좌나 큰 불상 대좌를 위한 공간으로 해석되어, 기존 왕의 집무공간 혹은 동궁전으로 추정하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또한, 북쪽 지구에서는 태자와 그를 보좌하는 궁인들의 생활공간으로 추정되는 여러 건물터와 우물, 배수로, 그리고 고급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어, 궁궐 복합체의 체계적인 구성이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발굴 결과에 따른 해석의 변화
이번 발굴 결과는 경주 왕경의 핵심 유적에 관한 기존의 인식을 재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해석
1970년대에 발굴된 월지 서쪽 건물터(Ⅰ-가지구)는 태자의 동궁전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이 건물터가 왕의 집무 공간일 가능성이 점점 제기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해석
최근 드러난 월지 동쪽 대형 건물터는 내진감주 등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 구조와 측면 계단 등에서 동궁전(태자의 거처 및 정무공간)으로 추정할 만한 여지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에 동궁으로 추정되었던 서쪽 건물터는 오히려 왕의 집무 공간일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통일기 이후 경주의 신라 왕궁 얼개가 월지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독립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발굴 결과는 통일 이후 궁궐 내에 연못을 중심으로 동서로 배치된 왕의 거처와 태자의 동궁전 기록과 부합한다”며, 새로운 해석의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향후 연구와 발굴의 중요성
이번 경주 월지 동쪽 대형 건물터 발굴은 신라 왕경의 정확한 구성과 운영 체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학계의 논의
향후 추가 발굴과 정밀 조사에 따라, 기존에 왕경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월성의 역할과 월지 일대의 궁궐터 역할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유산 보존
이러한 연구 성과는 경주의 역사와 신라 왕경의 문화유산을 재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일반인들에게도 보다 풍부한 역사적 이해를 제공할 것입니다.
경주 월지와 그 주변 유적지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연구는 신라의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며, 앞으로의 연구 결과가 경주 왕경 전체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신라의 도읍 경주에서 임금과 왕족이 거주했던 궁궐터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논란은 이번 발굴 조사 성과로 인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월성이 아닌 월지 연못 주변에서 대규모 궁궐터가 확인되면서, 기존의 왕경 해석에 변화가 불가피해졌으며, 왕과 태자의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단서가 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경주의 역사적 가치와 신라 왕경의 복합적인 면모를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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