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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최부자 이야기, 12대에 걸친 부자의 미덕과 지혜

     

    경주 최부자 가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300년 이상 12대에 걸쳐 이어져 온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부자 가문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 부를 사회적 책임으로 여기며 청렴과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최부자 가문이 12대에 걸쳐 부를 유지하며, 지혜와 덕을 쌓은 여러 일화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최부자의 시작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서 공을 세웠던 최진립입니다. 그에서 시작하여 3대 부자 최국선에 이르러 정착된 12대의 부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최진립

    최부자에 대한 영상

     

     

    최부자 가문이 남긴 가훈으로 "과거급제하되 벼슬은 하지 마라"

     

    경주 최부자 가문의 가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과거에 급제하되 벼슬은 하지 마라”라는 말입니다. 이 가훈은 권력의 유혹을 멀리하고,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며 겸손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1. 왜 벼슬을 피했을까?

     

    과거 급제는 당시 최고의 명예였고, 많은 사람들은 벼슬을 통해 권력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최부자 가문은 과거 급제 후에도 벼슬을 사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권력에 가까워지면 도덕성을 잃고, 탐욕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최부자들은 권력 대신 지역 사회를 위해 자신들의 부를 사용하며,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스스로 청렴하고 존경받는 가문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2. 최부자의 청렴한 선비

     

    최부자 가문 중 한 사람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중앙 정부의 벼슬을 제안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을 사양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왜 벼슬을 거절했느냐고 묻자, 그는 “돈과 권력은 사람을 망치기 쉽다. 나는 나와 가족을 망칠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최부자 가문이 권력보다 가문을 지키는 데 집중한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경주 교동 최부자집

    최부자의 인생 철학,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경주 최부자 가문은 또한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는 철학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높은 벼슬에 오르면 부를 축적하기 쉽지만,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그 대신, 중간 정도의 벼슬을 유지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덕을 베푸는 삶을 지향했습니다.

     

    1. 고을의 부유한 영감

     

    어느 날 한 고을의 부유한 영감이 최부자 가문의 재산을 질투하며 최부자 집안이 탐욕스럽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최부자 가문에서는 그 영감에게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퍼지자, 영감은 더 이상 최부자를 비난하지 않았고, 지역 사람들은 최부자 가문의 너그러움과 덕망에 깊은 존경을 보냈습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를 통해 본 나눔의 철학

     

    경주 최부자 가문은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가문은 항상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기부하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실천했습니다.

    굶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부를 나눠라

    1. 흉년의 구휼미

     

    한 해에 대흉년이 들어 경주 일대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 최부자 가문은 창고를 열어 쌀을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고,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최부자는 아낌없이 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최부자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 밥과 국의 차이

     

    한편, 최부자는 쌀을 나눠주면서도 정직함을 강조했습니다. 하루는 쌀을 나눠주는 창고에 한 청년이 몰래 두 번 줄을 섰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최부자 가문의 사람이 청년에게 묻자, 청년은 뻔뻔하게도 "처음엔 밥을 먹기 위해, 두 번째는 국을 위해서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를 본 최부자는 웃으며 쌀을 더 나누어주었고, 그 청년에게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네 사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부자가 된다는 건 항상 정직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라고 충고했습니다.

    최부자의 교육 철학으로 "과거 급제보다 인격을 중요시하라"

     

    경주 최부자 가문은 부와 명예보다 사람됨을 중요시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학문적 성취보다는 인격을 강조했으며,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 과거 시험보다 이웃 돕기

     

    최부자의 한 자손은 과거 시험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던 중 이웃이 집을 잃고 힘들어하자, 그는 자신의 공부 시간을 쪼개어 이웃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웃을 돕는 동안 공부는 뒤로 미루어졌고, 결국 과거 시험에서는 실패했지만, 그의 이웃 사랑은 널리 알려져 마을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최부자는 과거 합격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손을 더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라는 말에서 본 부의 나눔

     

    최부자 가문은 자신의 부가 가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에 이롭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을 쌓지 말고, 그 이상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가훈을 실천했습니다.

    1. 재산의 상한선

     

    최부자 가문은 논과 밭을 많이 소유했지만, 절대로 만석 이상의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습니다. 만석 이상으로 쌓인 재산은 항상 가난한 이웃이나 지역 사회에 기부되었습니다. 그 결과 최부자 가문은 300년 이상 부유한 가문으로 남을 수 있었고, 그들의 부는 지역 사회 전체를 이롭게 했습니다.

    안희제 선생과 김구선생

    덕과 나눔의 상징, 최부자 가문

     

    경주 최부자 가문은 단순히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닌, 덕을 쌓고 나눔을 실천한 진정한 의미의 부자였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명예보다는 지역 사회와 이웃을 위한 나눔과 청렴을 지키며 12대에 걸쳐 가문을 이어갔습니다. 최부자 가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재산의 일부를 독립운동 자금에 제공하여 훗날 김구선생이 감사함을 표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서 아낌없이 쓰던 최부자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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