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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의 최후 항전, 유대인 960명이 죽음을 택한 절벽 위 요새의 충격 실화

마스터지 2025. 5. 27.

유대인 마지막 항전지 마사다에 대한 이야기 알아보기

 

이스라엘 유대 사막의 한복판, 사해 서쪽 해안 근처의 외딴 절벽 위. 이곳에 위치한 ‘마사다(Masada)’는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이스라엘 민족의 저항 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성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천혜의 요새이자 고대 건축의 걸작, 그리고 참혹한 집단 자살의 역사적 비극이 공존하는 마사다. 이 글에서는 마사다의 건축, 역사,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상징적 의미까지 깊이 있게 소개합니다.

마사다는 어디에 있을까?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를 뜻하는 단어로, 이름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이 요새는 사해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서 약 434m 솟아오른 절벽 위에 위치하며, 길이 약 620m, 평균 너비 120m, 둘레는 약 1,300m에 달하는 넓은 평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배처럼 생긴 형상으로,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극히 어렵습니다. 고대 군사 전략상 이보다 더 완벽한 요새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과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방어 기지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의 걸작: 사막 위 궁전 요새

 

마사다는 기원전 37~31년 사이, 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헤로데 대왕에 의해 본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충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극심한 반란과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군주였기에 마사다를 ‘최후의 피난처’로 만들었습니다.

헤로데는 이 요새에 두 개의 왕궁(북궁전과 서궁전)을 세우고, 수십 개의 저수조와 창고, 무기고, 로마식 목욕탕, 성경 두루마리 보관실까지 갖추었습니다. 수천 명이 수년간 생존할 수 있는 식량과 물을 저장할 수 있었고, 로마 군단조차 이곳을 정복하기 위해 수년간 공성전을 벌여야 했습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과 마사다 항전

 

마사다의 이름이 역사 속에서 가장 크게 울려 퍼진 사건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서기 66~73년)입니다. 유대인 저항 세력 중 열심당원(Zealots)과 극단적 분파인 시카리(Sicarii)들이 이곳을 점령하며, 로마에 대한 최후의 저항 거점으로 사용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함락된 후, 약 960명의 유대인 남녀노소가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Eleazar ben Yair)의 지휘 아래 마사다로 피신했습니다. 이들은 2년 넘게 로마군 15,000명에 맞서 고립된 항전을 이어갑니다. 로마군은 포위망을 구축하고, 거대한 토담과 투석기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마사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73년 5월, 충격적인 최후

 

그러나 마침내 로마군이 토담을 통해 요새에 접근하게 되자, 엘리아자르는 "자유를 위해 죽자"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로마의 노예로 살 수는 없다며, 모든 유대인에게 자살을 권유합니다.

이에 따라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와 자녀를 먼저 죽이고, 제비뽑기를 통해 서로를 죽인 후, 마지막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960명 전원이 자결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의 기록을 통해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로마군이 다음날 요새에 진입했을 때는 살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시신만이 요새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사다의 재발견과 복원

 

수세기 동안 마사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19세기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63~1965년 사이 이갈 야딘 교수의 주도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습니다.

발굴 결과, 헤로데 왕궁의 벽화, 고대 저장고, 유대인 게릴라의 막사, 로마군의 진지, 목욕탕, 심지어 구약 성서 두루마리까지 발견되면서, 기록의 신빙성과 역사적 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날 마사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01년 지정)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수많은 방문객의 발길을 끌고 있습니다. 케이블카나 도보 등산로를 통해 요새에 오를 수 있고, 정상에서는 사해와 유대 사막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마사다가 이스라엘에 갖는 상징적 의미

 

마사다는 단지 고고학적 가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민족의 저항 정신과 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성지입니다. 이스라엘 국방군(IDF)은 신병 훈련 마지막 날 마사다에서의 행군과 맹세식을 거행하며, 이때 외치는 구호가 바로 "마사다는 다시는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과거 유대인들이 겪었던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되새기며,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의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사다의 역사적 핵심

 

항목 내용
위치 이스라엘 남부, 유대 사막 동쪽, 사해 서쪽 해안
높이 약 434m
크기 길이 620m, 너비 120m, 둘레 1,300m
건설 시기 기원전 37~31년 (헤로데 대왕)
주요 사건 서기 73년 집단 자결 사건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유네스코 지정 2001년 세계문화유산
 

마사다는 왜 오늘날까지 기억되어야 할까?

 

마사다는 건축적으로는 고대 로마-유대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고, 역사적으로는 유대 민족의 비극과 자부심을 상징하며, 문화적으로는 인간이 자유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이곳을 바라보는 순간,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서, 인간의 신념과 생존, 자유에 대한 고뇌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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