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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위나라의 영웅 조조, 그의 생애와 사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

마스터지 2024. 10. 6.

삼국지의 영웅, 조조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아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다룰 때 조조(曹操)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조조는 위(魏)나라의 초대 황제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위나라의 창시자이자 삼국지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군사적 재능으로 난세를 통일하려 했던 야심가였고,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인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조의 생애, 그의 무덤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흥미로운 일화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조조

조조의 생애와 업적

 

조조는 155년, 후한 말기에 태어나 혼란스러운 시대를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그가 관직에 오른 후에는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후 후한이 쇠퇴하며 중앙 권력이 약해졌을 때, 조조는 황제를 보필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헌제(獻帝)를 옹립하여 황제의 명분 아래 군벌들과 싸웠으며, 이를 통해 그의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조조는 군사적 능력뿐 아니라 행정적인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농업을 장려하고, 둔전제를 시행하여 군대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문학과 학문을 장려하여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또한,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왔는데, 대표적으로 순욱, 가후, 장료 등 뛰어난 책사와 장수들이 조조의 측근으로 활약했습니다.

 

조조는 자신의 세력권을 확장하기 위해 동탁, 여포, 원소 등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였습니다. 특히 원소와의 관도대전은 그의 전술적 재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투로, 숫적 열세를 극복하고 원소의 대군을 격파하며 화북의 패권을 장악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조조기마상

조조의 무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조조는 죽기 전 '간단하고 소박한 장례'를 원했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조조의 무덤은 다른 제후나 황제들의 무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꾸며졌습니다. 그러나 조조의 무덤은 오랫동안 비밀에 싸여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생전에 무덤 도굴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든 덕분입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그의 실제 무덤 위치는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2009년, 중국 허난성 안양시에서 조조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무덤 안에서는 '위 무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 조조의 무덤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의 진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무덤이 진짜 조조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덤의 발견은 조조와 그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조조의 무덤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측면이 있습니다. 조조는 생전에 '72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도굴꾼들이 그의 무덤을 찾기 어렵게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당시 많은 권력자들이 사후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조조는 여러 개의 가짜 무덤을 통해 자신의 무덤을 숨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조조의 지략과 철저한 계획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그가 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자신의 안전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조조박물관

 

삼국지 영웅들의 죽은 후 어떻게 되었을까?

 

조조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들

 

  1. 남다른 통찰력과 인재 등용 조조는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 매우 과감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천하의 책사였던 가후를 자신의 참모로 받아들인 사건입니다. 가후는 원래 조조의 적이었던 원소의 책사였지만, 원소가 패망한 후 가후는 조조에게 투항합니다. 조조는 그가 자신의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곧바로 중용하였습니다. 이는 조조가 개인적인 감정을 뛰어넘어 인재의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2. 위기를 기회로 바꾼 조조의 유머 조조는 전쟁 중 한 번은 자신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벗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군대가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을 때, 조조는 "앞에 매화 숲이 있어 그 열매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해 병사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매화 숲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사들은 이 말을 듣고 매화를 상상하며 갈증을 덜 느꼈다고 합니다. 이는 조조가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3. 조조의 '본심 드러내기' 조조는 종종 자신의 성격을 솔직하게 드러내곤 했습니다. 한 번은 자신의 친구인 여포가 자신을 의심하자, 조조는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 사건은 조조가 스스로 말한 "내가 남을 배신해도 남이 나를 배신하게 두지 않는다"는 유명한 격언을 그대로 실천한 사례로, 그의 냉혹하고도 현실적인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4. 문학을 사랑한 전략가 조조는 무장으로서뿐 아니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으며, 그 중 일부는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시에는 인생의 허무함과 난세를 헤쳐 나가야 하는 인간의 고뇌가 담겨 있어 당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가행(短歌行)'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조의 인간적인 면모와 야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5. 현실적인 정치가 조조 조조는 현실적인 정치가로서의 면모도 자주 드러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때로는 매우 냉혹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조는 후한의 황제를 옹립했지만, 실제로는 황제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고 모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그가 권력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런 현실적인 성향은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았지만, 동시에 그를 난세의 생존자로 만들었습니다.
  6. 조조와 가족 관계 조조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정치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특히 그의 아들 조비(曹丕)는 위나라를 세워 황제에 올랐으며, 조조의 유업을 이어갔습니다. 조조는 자녀들에게 엄격한 교육을 시켰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도록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냉정하게 대했으며, 이는 가족 간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7. 병법에 능한 지휘관 조조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관도대전은 그의 병법적 재능을 잘 보여주는 전투였습니다. 조조는 원소의 대군에 비해 숫자가 훨씬 적었지만, 지리적 이점과 병사의 사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는 그의 병법적 통찰력과 상황 판단 능력을 잘 보여주며, 후대의 많은 군사 전략가들에게 교훈을 주었습니다.
  8. 조조의 인간적인 면모 조조는 종종 냉혹하고 야심찬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놓칠 수 없습니다. 그는 부하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장에서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때로는 직접 병사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조조가 단순히 권력에만 집중한 인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려 했던 지도자였음을 보여줍니다.

 

조조는 역사적으로도, 삼국지 이야기 속에서도 매우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용맹하고 뛰어난 지략가였으며, 동시에 냉혹한 정치가였습니다. 그가 이룬 업적과 그의 생애는 단순히 전쟁의 승패를 넘어, 난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성공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또한, 그의 무덤과 관련된 이야기나 다양한 일화들은 그를 더욱 흥미로운 인물로 만듭니다. 조조는 단순한 야심가를 넘어 난세를 헤쳐 나간 리더로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입니다. 삼국지를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신삼국지 95부작으로 제작된 드라마를 한번쯤 정주행 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상영중인 삼국지입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대작입니다. 

 

삼국지 | 넷플릭스

후한 말기에 이르자 왕조는 쇠락하고, 세상은 도탄에 빠진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각자의 셈법으로 태평성세를 꿈꾸며 패왕의 대업을 이루고자 일어선 이들이 있었으니, 이제 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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