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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을 붙잡은 백제 귀족, 예식진의 묘에서 드러난 진실

마스터지 2025. 7. 27.

백제 멸망의 그림자 속, 한 인물의 선택과 그가 남긴 역사

 

660년,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가 무너진 그 순간.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웅진으로 피신했을 때, 웅진 방령 예식진은 누구보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백제의 최후를 결정짓는 인물이었고, 그로 인해 “배신자”라는 오명을 썼습니다. 그러나 2006년 중국 하남성에서 그의 묘지명이 발견되면서, 우리는 예식진이라는 인물의 복잡한 이면과 백제 유민의 운명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예식진의 생애, 그의 묘지명 발견의 의의, 그리고 백제사 속에서 그가 차지한 역사적 위치를 자세히 소개합니다.

예식진은 누구인가?

 

  • 이름: 예식진(禰寔進)
  • 출생: 615년, 백제 웅진(현재 충남 공주)
  • 가문: 조부 예다, 부친 예사선 모두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佐平)을 지낸 명문 귀족
  • 관직: 백제 멸망 당시 웅진 방령(지역 행정 및 군사 책임자)

예식진은 단순한 지방 관리가 아니었습니다. 백제 내에서도 명문가 출신으로, 웅진 지역의 실질적 실권자였습니다. 그의 정치적 선택은 당시 백제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죠.

 

백제 멸망의 결정적 순간… 의자왕을 넘기다

 

660년 7월,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며 수도 사비성이 무너집니다. 의자왕은 마지막 저항을 위해 웅진성으로 피신합니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던 예식진은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 660년 7월 18일, 예식진은 웅진으로 도착한 의자왕을 체포하여 나당연합군이 있는 사비성으로 직접 데려갑니다.
  • 이 사건으로 인해 백제의 마지막 저항세력이 붕괴되며, 백제는 공식적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 선택은 오늘날까지도 “나라를 판 자”라는 평가와 “현실적 판단을 한 실리적 정치가”라는 상반된 시선을 불러옵니다.

 

백제 멸망의 마지막날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식진 묘지명, 1300년의 침묵을 깨다

 

2006년, 중국 하남성 낙양에서 정사각형 석재로 된 **예식진의 묘지명(墓誌銘)**이 발견됩니다. 이 금석문은 그동안 불분명했던 예식진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 묘지 크기: 약 58.5cm 정사각형 석재
  • 글자 수: 18행 288~289자, 해서체
  • 특징: 12지신 동물상 조각, 정교한 서체
  • 기록 내용: 출생지, 가계, 관직, 당나라 이주, 사망 경위, 장례 위치 등

묘지명에 따르면 예식진은 백제 멸망 후 당나라로 건너가 ‘좌위위대장군(左威衛大將軍)’이라는 고위 직책에 오릅니다. 672년 산동성 내주 황현에서 58세로 사망한 뒤, 당 고종의 명으로 장안 남쪽 고양원에 안장되었다는 기록도 담겨 있습니다.

예식진의 묘가 말하는 역사적 의미

 

예식진의 묘지명은 단순한 개인의 이력서를 넘어서, 고대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백제 유민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구분 내용
백제 유민의 삶 멸망 이후 당나라에서 관직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
고대 귀족의 변신 백제 좌평 가문의 후예가 당 제국의 고위 관리로 변모
역사적 사료 백제 멸망기의 권력 구조, 지방 방령의 실상, 유민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
 

예식진은 형 예군과 함께 당나라에서 계속 관리 생활을 이어갔고, 이는 곧 백제 유민들이 단순 피지배층이 아니라 당 제국 속 지식인 계층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배신자’일까, ‘현실주의자’일까?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의자왕을 사로잡은 예식진을 비판해 왔습니다. 백제의 최후를 결정지은 인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음과 같은 관점도 존재합니다.

  • 이미 사비성이 함락된 상황에서 웅진의 독자적 저항은 사실상 무의미했을 가능성
  • 무고한 주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결정
  • 당나라와의 정치적 협상을 염두에 둔 실리적 판단

역사는 늘 여러 시각이 존재하며, 그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식진이 남긴 선택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라가 무너질 때, 충성과 생존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예식진, 한 인물로 본 멸망의 단면

 

예식진의 묘와 묘지명은 단순한 고고학적 발견을 넘어, 백제 멸망의 이면과 유민의 운명을 통찰할 수 있는 귀중한 열쇠입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떠난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조명해봄으로써, 우리는 역사 속 인간 군상의 복잡성과 그들의 선택이 지닌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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