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 신라인도 복불복을?! 통일신라 왕족들의 술자리 벌칙 '주령구' 이야기
동궁과 월지에서 발견된 14면체 주사위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술자리 벌칙 게임. 무반주 댄스, 원샷, 러브샷… 이런 벌칙이 통일신라시대 왕궁에서도 벌어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그중에서도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에서 출토된 하나의 특이한 유물은 천 년 전 신라인들의 흥겨운 술자리 문화를 생생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주령구(酒令具)’입니다.
월지에서 발견된 놀라운 유물, 주령구란?
주령구는 쉽게 말하면 술자리 게임용 주사위입니다.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동궁과 월지를 발굴하던 중 발견한 이 유물은 나무로 만든 복합형 주사위로, 표면에 14개의 한자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게 대체 뭘까?’ 싶었던 이 주사위는 문구를 해석하면서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놀랍게도 모두 술자리 벌칙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이죠. 현대식으로 말하면 복불복 게임의 벌칙을 기록한 천년 전 술자리 게임 도구였던 셈입니다
주령구의 벌칙들, 지금 봐도 웃음이 터진다
주령구에는 총 14개의 벌칙이 새겨져 있었고, 지금 봐도 놀랄 만큼 유쾌하고 발랄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주령구 벌칙 예시
번호 | 문구 | (한자)해석 |
1 | 有犯空過 |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기 |
2 | 禁聲作舞 | 소리 없이 춤추기 (무반주 댄스) |
3 | 衆人打鼻 |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 |
4 | 三盞一去 | 술 석 잔 한 번에 마시기 (원샷) |
5 | 自唱自飮 |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
6 | 飮盡大笑 | 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
7 | 曲臂則盡 | 팔을 굽힌 채 술 다 마시기 (러브샷 느낌) |

이 외에도 시 한 수 읊기, 노래 청하기, 얼굴 간질이기 등 그야말로 흥과 멋을 아는 신라인들의 센스가 돋보이는 벌칙들이 많았습니다.
월지(동궁과 월지)는 어떤 곳?
이 주령구가 발견된 월지는 신라시대 동궁(세자궁)에 조성된 인공 연못입니다. 통일신라의 문무왕이 삼국 통일을 기념하며 조성했고, 연못에는 인공 섬과 정자, 진귀한 동물과 화초까지 가꾸었다고 합니다.
특히 월지의 연회장인 ‘임해전’에서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실 연회를 열었고, 바로 그곳에서 이 주령구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만날 수 있는 보물들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은 한국 박물관 중 유일하게 단일 유적지 유물만을 전시하는 전용관입니다. 주령구 외에도 다음과 같은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초 심지 자르는 금동가위
- 왕실 향로와 장식품
- 작은 나무배
- 궁중 도자기와 식기 등
이들은 모두 무덤이 아닌 궁궐에서 실생활에 사용되던 것들로, 당시 왕실의 일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참고: 주령구는 출토 당시 연못 진흙 속에 있었고, 보존 처리 과정에서 화재로 원본은 소실. 현재는 복제품이 전시 중입니다. |
통일신라의 수학적 기술력까지 엿보다
이 주령구는 단순한 주사위가 아닙니다. 4각형 면 6개와 6각형 면 8개가 결합된 특이한 구조로, 면마다 나올 확률을 균등하게 유지해야 하는 정교한 수학적 설계가 요구됩니다.
이는 당시 통일신라 시대에도 기하학과 확률 개념, 정밀한 목공 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증거입니다.
마무리하며
천년 전 신라 왕궁에서 벌어졌던 연회의 분위기, 주령구 하나로도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웃던 신라인들의 풍류.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정교한 기술과 예술.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은 그 모든 것을 품고 오늘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동궁과 월지의 야경과 함께 월지관의 주령구도 꼭 감상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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