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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대장경, 불교 경전을 목판에 새긴 최초의 대장경에 대한 이야기

마스터지 2025. 1. 29.


초조대장경, 고려시대의 불교적 위상과 목판 인쇄술의 걸작

 

고려시대의 문화적 업적 중 하나인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은 불교 경전을 목판에 새긴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의 학문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이 글에서는 초조대장경의 제작 배경, 동아시아 불교의 이해,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초조대장경(우리역사넷)

초조대장경이란 무엇인가?


초조대장경은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목판에 새긴 대장경을 의미합니다. '초(初)'는 '처음', '조(雕)'는 '새기다'라는 뜻으로, 고려가 불교 경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목판에 새긴 첫 번째 대장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문화였으며, 이는 주변 국가인 송(宋)과 거란(契丹)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부처의 힘을 빌고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당시 불교의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조대장경 증거에 대한 뉴스입니다.

 

동아시아의 불교 이해와 대장경 제작


대장경은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 경전을 한자 문화권에서 집대성한 것으로, 경(經), 율(律), 론(論)으로 구성된 삼장(三藏)을 포함합니다. 불교는 1세기 경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로 전파되었지만, 인도의 복잡한 철학 체계를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자로 번역된 한역경전(漢譯經典)은 2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수많은 승려와 학자들의 노력으로 점차 정교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동아시아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0세기 북송(北宋)은 발달된 인쇄술을 바탕으로 최초의 대장경인 개보장(開寶藏)을 제작했습니다. 이 대장경은 고려에도 전해졌고, 고려는 이를 자극으로 삼아 자신들의 대장경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초조대장경입니다.

 

초조대장경의 제작 배경과 의미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10조에서 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고려의 번영이 부처님의 가호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송의 개보장을 접한 고려는 이를 모델로 삼아 11세기 초 초조대장경을 제작했습니다. 특히 거란의 침입이 심해지던 시기, 고려는 대장경 제작을 통해 민심을 결집하고 부처님의 가호를 받아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학문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달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한문을 읽고 쓰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북송의 개보장을 복각(復刻)하는 기술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복각은 인쇄된 종이를 목판에 얹어 그대로 새기는 기술로, 이를 통해 고려는 대장경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초조대장경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초조대장경의 소실과 재조대장경


안타깝게도 초조대장경판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렸습니다. 고려는 이를 대체하기 위해 재조대장경을 제작했는데, 이는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초조대장경의 인경본은 일부만 남아 있으며, 국내외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특히 일본 교토의 남선사에 소장된 초조대장경은 그 존재가 최근에야 알려지며 학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초조대장경의 역사적 의미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이는 단순히 불교 경전을 모은 것을 넘어, 당시 최고의 학문이자 사상 체계였던 불교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규모 지식 사업이었습니다. 또한, 고려가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대장경을 제작한 것은 국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불교에 대한 깊은 믿음을 보여줍니다.

 

초조대장경은 동아시아 불교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이 교장(敎藏)을 제작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고려만이 이룩한 업적으로, 동아시아 불교학의 선두에 서려는 고려의 학문적 수준을 보여줍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시대의 학문적, 기술적 역량을 집약한 결과물입니다. 이는 단순한 불교 경전의 모음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적,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초조대장경의 제작은 고려가 동아시아에서 문화적, 학문적 선두에 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으며,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