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지도자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전 세계 사람들이 애도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전 세계가 애도하는 라틴 아메리카 첫 교황의 마지막 여정
2025년 4월, 가톨릭 세계는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이 향년 88세로 선종했다는 바티칸의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교황의 죽음은 단순한 한 종교 지도자의 부재를 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선사했던 위대한 인물의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2025년 4월 22일 오전 7시 35분(현지 시각), 바티칸은 케빈 패럴 추기경의 발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사실을 공식화했습니다. 추기경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오늘 아침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전하며 전 세계 신자들에게 비통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전날 부활절을 맞아 수천 명의 신도들이 모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행복한 부활절"이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던 교황. 그날이 생전 마지막 공식 인사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바티칸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예수회(Jesuit) 소속 성직자로서 평생을 신앙과 정의, 약자의 편에 서는 삶에 헌신해 왔습니다. 그는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 이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며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 최초의 예수회 교황, 약 1,200년 만에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라는 여러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가난한 자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삶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사목 철학과 매우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건강과 병마의 싸움 끝에 맞은 마지막 순간
최근 몇 달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건강 문제로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특히 이중 폐렴으로 인해 지난달부터 5주간 병원에 입원했고, 그의 의료진에 따르면 생명이 위독했던 순간이 두 차례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 평생 감염에 취약한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고령과 질환이 겹치며 상태는 악화되었고, 결국 선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의 추모 물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 정상들은 앞다투어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의 편에 섰던 분이었습니다.”
- 딕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의 교황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유엔, 유럽연합,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국제기구 및 종교단체들도 일제히 성명을 내고 교황의 선종을 깊이 애도했습니다.
교황 선출 절차, '콘클라베'의 시작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과정을 준비합니다. 전 세계 252명의 추기경 중 투표권을 가진 80세 미만의 추기경 135명은 바티칸으로 소집되어 ‘콘클라베(Conclave)’에 들어갑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열쇠를 잠근다'는 뜻으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교황 선출회의입니다. 모든 추기경들은 비밀 투표를 통해 차기 교황을 결정하며, 흰 연기가 성 베드로 성당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면 새 교황의 선출을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과 신앙의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빈곤, 환경, 이민, 종교 간 대화, 성직자 성추문 개혁 등 민감하고도 핵심적인 이슈들을 정면으로 다루며 ‘행동하는 교황’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교회는 병원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진정한 의미의 신앙과 실천을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는 종교계를 넘어 전 세계 환경운동과도 깊은 공명을 이루었으며, 동성애자와 이혼자 등에 대한 포용적 시각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한 시대의 끝,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는 교회의 보수적인 이미지에 균열을 만들며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진정한 개혁가였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따뜻한 빛을 비춘 위대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교황을 기다리게 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사랑과 정의, 겸손의 유산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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