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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첫 번째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마스터지 2025. 1. 17.

조선의 숨은 보물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야기

 

조선 시대의 숨겨진 보물 중 하나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지도가 왜 특별한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조선의 첫 번째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란?


1402년, 조선의 태종 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사형(金士衡), 이무(李茂), 이회(李薈) 등 뛰어난 인재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다양한 지도를 토대로 새롭게 만들어낸 이 지도는 단순한 지리 정보를 넘어서 당시 조선의 세계관과 문화를 반영한 소중한 역사 자료입니다.

 

지도 이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온 세상의 영토와 역대 왕조들의 수도를 하나의 지도에 그려 넣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의 중국 중심 세계관을 반영하면서도, '혼일(混一)'이라는 단어를 통해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필사본, 일본에만 남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안타깝게도 현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원도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이 지도를 수정·보완한 여러 지도가 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필사본은 총 4점이 존재하며 모두 일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필사본: 교토 류코쿠대학 소장본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교토 류코쿠대학에 소장된 필사본으로,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필사본은 원도에 가장 근접한 형태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른 필사본들과 비교해도 구조와 형태가 거의 유사합니다.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본


일본 외에도 국내에는 류코쿠대학 소장본을 모사한 사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어,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놀라운 구성

 

지도의 크기와 재질


필사본마다 크기와 재질이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큰 필사본은 혼코우지 소장본으로, 무려 가로 280cm, 세로 220cm의 종이에 그려져 있습니다. 반면, 교토 류코쿠대학 소장본은 비단에 그려져 있어 더욱 섬세한 느낌을 줍니다.

 

색채와 기호의 조화


지도의 전체적인 색채는 육지는 엷은 황갈색, 바다는 녹색, 하천은 청색으로 구분되어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합니다. 각 국가명과 수도는 원과 사각형의 빨간색 기호로 표시되어 있어 시각적으로도 매우 명확합니다.

 

제목과 소제목의 예술성


지도 상단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는 제목이 전서(篆書)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역대제왕국도(歷代帝王國都)'라는 소제목과 함께 수도 목록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몽골제국의 지도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보여줍니다.

 

중국, 조선, 일본의 섬세한 묘사


지도의 중앙에는 거대한 중국이 표현되어 있으며, '요도(堯都)', '순도(舜都)', '낙양(洛陽)' 등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가 빨간색 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한반도는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으며, 중앙에 한양도성이 기호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선의 해안선은 상당히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지리적 이해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 열도는 한반도 아래쪽에 작게 그려져 있으며, 교토의 위치에 '일본(日本)' 국명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만, 큐슈(九州)와 아오모리(靑森)의 위치는 실제와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당시 조선의 일본 인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포함된 광범위한 세계관


지도 왼쪽 부분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가 그려져 있으며, 중동, 유럽, 러시아 지역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15세기 초 아프리카 대륙이 실제 지형과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권근의 지문과 제작 목적


지도 하단에는 권근이 48행 285자의 지문을 남겼습니다. 이 지문에서는 지도 제작 목적과 그 의미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근은 지도를 통해 천하의 지리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며, 지역의 원근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제작 비하인드 이야기

 

참여 인물과 참고 자료


지도 제작에는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 검상 이회 등의 인물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성교광피도(聖敎廣被圖)」「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과 일본 지도를 편집하여 하나의 지도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당시 최신 지도를 입수하여 각각의 장점을 결합한 결과물입니다.

 

국가적 중요성의 지도 제작


의정부 좌·우정승이 주축이 되어 지도 제작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이 작업이 국가의 주요 사업으로 진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검상 이회는 조선 초기 의정부에 소속되어 입법 관련 업무를 주로 맡았던 정5품 관직으로, 「팔도도(八道圖)」를 제작하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조선 지도 부분에 반영했습니다.

 


외부 지도의 영향과 독창성


참고한 외부 지도인 「성교광피도」「혼일강리도」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유입된 다양한 지도학적 지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교광피도」는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을 받아 중국 외의 지역을 그린 지도였으며, 「혼일강리도」는 중국 역대 왕조의 강역과 도읍을 그린 지도였습니다. 일본 지도는 1401년 박돈지가 일본 사신으로 갔다가 비주수 원상조에게서 입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역사적 가치

 

동서 문화 교류의 증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지도를 통한 동서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됩니다. 중세 이슬람의 지도학이 중국으로 유입되고, 그것이 조선에서 변형된 형태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이슬람 시대에는 고대 로마의 지도학을 수용하여 지리학과 지도학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몽골제국의 문화 전파가 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리적 정확성과 혁신성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15세기 초 아프리카 대륙을 실제 지형과 거의 유사하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시 조선이 알고 있던 세계의 지리를 매우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이슬람 지도학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을 상단으로 배치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동쪽을 향하도록 그리는 등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 수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지금의 모습에 가까운 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결과입니다.

 

국가 통치와 지리 인식의 중요성


권근의 지문에 따르면, 지도와 지리지의 활용은 국토 영역, 인구, 물산, 토지 등을 파악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조선 초기에 천문과 지리 부문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등이 제작된 것이 새로운 국가 조선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권근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의미와 앞으로의 연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조선 시대의 뛰어난 지도 제작 기술과 동서 문화 교류의 산물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유물입니다. 이 지도를 통해 당시 조선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지도 제작이 국가 통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세 이슬람 지도학과의 연계성을 통해 동서양의 지식이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조선 시대의 문화와 지리 인식을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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