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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붕당 정치의 시작, 동인과 서인의 대립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마스터지 2025. 4. 5.

 

조선 붕당 정치의 시작, 동인과 서인의 대립과 형성 이야기

 

조선 시대의 정치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동인과 서인의 분열과 갈등, 즉 붕당 정치의 기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은 조선 중기를 흔들었던 동인과 서인의 탄생 배경부터 그 특징, 그리고 이후 남인과 북인으로의 분열까지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동인과 서인은 왜 나뉘었을까?

 

📌 시작은 ‘이조전랑’ 자리에서 벌어진 인사 갈등

1575년, 선조 8년, 조정에서는 ‘이조전랑(吏曹銓郞)’이라는 중요한 관직을 놓고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 자리는 조선시대 문관 인사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컸습니다.

  • 김효원: 신진 사림파, 개혁적 성향의 젊은 인재
  • 심의겸: 기성 사림파, 권력과 척신과의 연결 고리가 있는 인물

김효원의 집은 도성의 동쪽, 심의겸의 집은 서쪽에 있었다고 해서 이들이 이끄는 정치 세력을 각각 동인서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붕당정치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인과 서인의 특징과 차이점

 

두 당파는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학문적 기반, 지역 기반, 구성 인물까지 크게 달랐습니다.

 

🌸 동인(東人)

  • 구성: 신진 관료 및 젊은 유학자
  • 학문 기반: 퇴계 이황의 주리론 + 조식 계열
  • 정치 성향: 왕권 강화 지지, 척신 정치 비판
  • 주요 지역: 경상도, 영남 중심
  • 대표 인물: 김효원, 이산해, 이언적, 정여립 등

이산해

🌾 서인(西人)

  • 구성: 중견 이상 기성 관료층
  • 학문 기반: 율곡 이이의 주기론, 성혼 계열
  • 정치 성향: 신권(신하의 권한) 강조, 현실적 정치 지향
  • 주요 지역: 경기, 충청, 황해도
  • 대표 인물: 심의겸, 이이, 성혼, 송익필 등

이처럼 이념과 지역, 인물 구성 모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율곡 이이

정여립 사건과 기축옥사: 대립이 폭력적으로 터지다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이 발생하면서 동서 간의 갈등은 폭발합니다.

  • 정여립: 원래 동인이었지만 탈당 후 독자 노선을 걷다가 모반 혐의로 자결
  • 이 사건을 기회 삼아 서인은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
  • 수백 명의 동인 인사들이 처형되며, 정치 지형은 급변

이때부터 동인 내부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정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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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의 분열: 남인과 북인의 탄생

 

1591년 ‘건저 문제’가 터지며 동인은 다시 권력을 잡지만 내부 갈등이 불거집니다.

  • 남인(南人):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온건파, 실용적 개혁 추구
  • 북인(北人): 조식 학파 중심, 강경한 정치 노선, 서인에 대한 보복적 태도

이후 정여립 숙청의 반작용으로 북인이 득세했고, 임진왜란 시기에는 북인이 실질적 정권을 잡습니다.

 

붕당 정치의 빛과 그림자

 

✅ 긍정적 측면

  • 다양한 의견 수렴 가능
  • 권력 독점 방지
  • 공론정치 실현 기반

 

❌ 부정적 측면

  • 과도한 당쟁으로 국론 분열
  • 임진왜란 당시 늦장 대응
  • 국정 비효율과 민생 혼란

 

붕당은 애초에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타협보다는 파벌 중심의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동인과 서인, 조선 정치사의 출발점

 

동인과 서인의 형성과 분열은 단순한 ‘정당의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 중기 이후 붕당 정치의 서막이었고, 이후 조선 사회의 정치 구조와 권력 분포, 심지어 외교와 군사적 대응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붕당 정치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며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등으로 세분화되었고, 이는 결국 조선의 근대화 지연과 국력 약화로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동인과 서인의 시작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닌, 조선의 운명을 좌우한 정치적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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