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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8

아픈 과거를 가슴에 품고 군주가 된 정조 탄생과 어린 시절 정조의 어린 시절은 그의 미래에 미리 나타나는 기적과 예상치 못한 행동들로 가득한 특별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1752년 9월 22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 아들로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난 그는 이름을 산이라 하였고, 자는 형운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날, 할아버지인 영조는 꿈에서 용이 여의주를 안고 침상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큰 비가 내리고 뇌성이 일어나 구름이 자욱해지며 용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정조가 후에 군주로서의 위대한 역할을 맡을 것을 미리 예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린 시절의 정조는 말을 배우기 전에도 문자를 보는 것을 즐겼고, 효자도나 성적도 같은 감계를 담은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놀이가 아닌 제물을 차려놓고 노.. 카테고리 없음 2024. 4. 8.
영조와 탕평책 붕당의 첨예한 대립과 탕평군주의 등장 17세기 후반부터 조선의 정치는 붕당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붕당은 서인과 남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서인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 출신의 세력이었고, 남인은 경상도 출신의 세력이었습니다. 이들 사이의 대립은 각 파벌의 이익과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붕당 간의 대립은 왕권의 위기로 이어지며, 왕은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벌였습니다. 숙종대(1674-1720)에는 붕당 간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환국'이라는 정치 방식이 시도되었습니다. 환국은 왕이 내각을 자주 변경하여 신하들 간의 충성심을 경쟁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붕당의 대립을 일부 해소하고 왕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일부 성공했으.. 카테고리 없음 2024. 4. 7.
정약용, 영원한 소울메이트 정조와의 일생 1. 정약용의 가족과 어린 시절정약용은 해남 윤씨 출신의 외가와 국문학사 윤선도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정재원과 해남 윤씨로, 정약용은 1762년 8월 5일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에서 5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차분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었던 정약용은 천연두로 고생하면서도 눈썹이 3개인 듯한 얼굴에 대한 놀림에도 냉정하게 대처했다. 이런 성품은 그 후 그의 생애를 통해 계속되었다.1783년, 정약용은 성균관 유생으로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정조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정조는 정약용을 매우 선호하며 자주 그를 불러 시를 짓게 했다. 그러나 대과 시험에서는 미끄러지며 계속해서 불합격을 경험했다. 음모론에 의하면 남인 영수 채제공이 주최한 시험에서 정약용이 합격.. 조선시대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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